[산타 마르타의 집 아침미사] “하느님의 자애로우심이 드러나는 곳은 상처”


프란치스코 교황이 12월 14일 산타 마르타의 집 아침미사 강론에서 강조한 점은 바로 하느님의 자애로우심이었다. 이 주제는 다음과 같이 제1독서인 이사야 예언서와 (시편) 화답송에서 찾아볼 수 있다. “(…) 그 자비 모든 조물 위에 내리시네.” 여기서 이사야 예언자가 제시한 이미지는, 하느님과 우리 사이를 가능한 한 비슷하게 하시려고 목소리를 낮추시어, 자녀들에게 말하는 아버지처럼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하느님의 모습이다. 교황은 무엇보다도 하느님께서 “우리를 어루만지시며, ‘두려워하지 마라. 내가 너를 도와주리라’고 안심시키시는 분”이라고 설명했다.

“우리 하느님께서는 우리에게 자장가를 불러 주시려는 것 같습니다. 우리 하느님께서는 그렇게 하실 수 있으십니다. 하느님의 자애로우심은 아버지와 어머니의 자애로움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여러 차례에 걸쳐 ‘어머니가 아들을 잊는다 해도 나는 너를 잊지 않을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어머니가 뱃속에 아이를 품듯 우리를 당신 안에 품어 주십니다. 이 대화를 통해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이해시키시려고, 우리가 당신께 신뢰를 둘 수 있게 하시려고, 바오로 사도가 하느님을 ‘압바, 아빠’라고 불렀던 용기로 우리도 하느님을 아빠라고 부를 수 있게 하시려고, 작아지셨습니다. 아빠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은 하느님의 자애로우심 덕분입니다.”

위대함은 작아지고, 작음이 위대해진다

아울러 교황은 하느님께서 때때로 우리를 야단치시는 것이 사실이라며, 그분께서는 위대하시지만 당신의 자애로우심으로 우리에게 다가오시어 우리를 구원하신다고 말했다. 이어 이는 신비이며 가장 아름다운 것들 중 하나라고 말했다.

“자신을 낮추시고, 자신의 낮춤 안에서 위대하심을 멈추지 않으시는 하느님께서는 위대하십니다. 작고 위대하다는 이 변증법 안에 하느님의 자애로우심이 있습니다. 곧 위대함은 작아지고, 작음이 위대해집니다. 성탄은 이를 이해할 수 있도록 우리를 도와줍니다. 구유 안에 계시는 (…) 작은 하느님을 이해할 수 있도록 우리를 도와줍니다. 『신학대전』의 첫 부분에 나오는 토마스 아퀴나스 성인의 말이 떠오릅니다. 그는 ‘신은 무엇입니까? 가장 신성한 것은 무엇입니까’라는 물음에 다음과 같이 대답했습니다. “위대한 것에 놀라지 마십시오. 작은 것을 생각하십시오. 이 두 가지가 함께 하는, 이것이 신성한 것입니다(Non coerceri a maximo contineri tamen a minimo divinum est)”.

특별히 어디서 하느님의 자애로우심이 나타나는가

교황은 하느님께서 우리를 도와 주실 뿐 아니라 우리가 앞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큰 수확과 기쁨을 우리에게 약속하셨다며, 하느님께서는 아버지일 뿐 아니라 아빠라고 강조했다.

“나는 이처럼 주님과 함께 대화할 수 있는가, 아니면 두려운가? 각자 스스로에게 대답해 보십시오. 그러나 누군가는 ‘하느님의 자애로우심에 대한 신학적 장소는 어디인가?’라고 물을 수 있습니다. 어디서 하느님의 자애로우심을 잘 발견할 수 있습니까? 하느님의 자애로우심이 가장 잘 드러나는 곳은 어디입니까? 바로 ‘상처’입니다. 나와 여러분의 상처입니다. 나의 상처와 하느님의 상처가 만날 때입니다. 우리는 그들의 상처 안에서 치유됐습니다.”

끝으로 교황은 착한 사마리아 사람의 비유를 상기시켰다. 그곳에는 산적에게 당한 사람에게 관심을 두고, 그의 상처를 닦아주며, 도와주고, 치료비를 지불해준 누군가가 있었다. 교황은 그곳이 바로 “하느님 자비하심의 신학적 장소”라며 “곧 우리의 상처가 있는 곳”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교황은 “’어서, 어서, 너의 상처를 보여다오. 내가 그 상처를 치료해 주마’라는 주님의 초대”를 생각하면서 하루를 보내자고 권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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